법성포항이 있는 영광의 갓봉과 구수산 산행은 약간 흐린날씨 속에 진행했다.
예로부터 영광은 칠선바다에서 잡히는 조기가 유명한곳..
오늘은 서해바다를 보며 300m대의 산들을 이어타는 코스로 가지만 그리 만만치는 않다.
그래도 오르내림이 있어 재미도 있고 법성포항의 멋스런 풍경도 구경하고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의 생가를 둘러보는 코스라 아주 좋다.
ㅁ 산행일시 : 2012. 1. 8 (일요일)
ㅁ 산행코스 : 백수우체국 ~ 갓봉 ~ 봉화령 ~ 구수산 ~ 상여봉 (법성포항 조망) ~ 소태산 생가
ㅁ 산행시간 : 4시간 / 중앙회산악회 20명
갓봉정상 (344m)의 정상석 모습.
8시에 서울을 벗어난 버스가 11시20분 영광IC를 통과하고...
20분을 더 달려 11시40분에 백수우체국 앞에 도착한다.
도착지 풍경은 여늬 마을과 별반 다를게 없고 그리 특색 있진 않다.
장비를 점검하고 11:45분에 바로 산행출발한다.
삽촌마을 표지석옆의 들머리로 진입.
리더는 버스안에서 스패치를 미리 할것을 권했다.
차창밖의 눈을 보니 그래야 할거 같다고...
보이는 풍경은 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금새 깨닫는다. 경험자의 예상이 맞음을...
등로를 오르며 뒤돌아보니 경지정리가 잘된 농지가 곡창지대 임을 말해주는듯 하다.
오른쪽에 나무사이로 천마저수지가 보인다.
첫번째 전망바위를 지나자 가파른 경사에 아이젠이 필요하다.
남쪽지방의 산이라 아이젠/스패치를 준비 안한 회원이 있었는데 고생을 좀 했다.
겨울산행은 지역이나 산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필수품이라는 생각을 다시해본다.
서해바다쪽은 흐린 날씨로 조망이 아쉽다.
진행방향의 봉우리들..
바위밑 무덤..
이 저수지는 능선 서쪽의 흥곡저수지로 보인다.
눈덮인 구비구비 산길...
등로에서 본 주변의 풍경.
12시40분 갓봉에 도착한다. 1시간이 채 안걸렸다.
나중에 보니 표지판의 거리 신뢰성은 좀... 안맞는곳이 있는듯하다.
갓봉 우측의 수리봉 (354M)
갓봉에서 구수산과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서 벗어나 있다.
갓봉에서 잠시 쉬고 모재봉으로 가는길목이 미끄러운 경사에 잠시 지체..
모재봉 가는길은 제법 눈길답다.
모재봉에 도착했으나 다른 산객들이 있어 그냥 패스...
이제 전방의 봉화령을 향해 간다.
봉화령가는길의 봉우리에 있는 깃대봉 처럼 생긴것은 풍력자원을 측정하는 장비라고 한다.
경사에선 미끄러워 조심조심 진행하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
안부(모재)에 식사중인 다른 산객들 사이로 ....
뒤돌아보니 봉우리에 일행 2명이 조그맣게 보이는데...목소리는 잘 들린다.
암릉지역을 통과하고..
봉화령 (373M)에 도착한다. 오후 1시30분.
오늘 코스중 제일 높은곳.. 이곳에서 정상주와 간식을 하고 가기로 한다.
2시간이 채 안걸린시간.
봉화령봉에서 본 서해가 그나마 제일 낫다.
바다에 인접한 염전도 보이는데 이 염전이 영광굴비의 맛에 크게 일조한다고..
봉화령에서 동쪽 능선은 구수산~상여봉~옥녀봉을 거쳐 와탄천으로 내려가고...
북쪽능선은 가자봉~뱀골봉을 거쳐 대신리에서 서해바다로 숨는다.
그래서 서해바다를 보며 가는 산행은 가자봉 방향이 더 어울린다.
정상주 일부는 후미를 위해 나무이정표 뒤에 숨겨놓고 구수산방향으로 진행한다.
우리 일행보다 먼저 온 다른 산객들이 이정표에 배낭을 내려놓고 물건을 꺼내기도 하는데..
30cm옆에 있는 포도주병은 발견 못한다 ㅎㅎ
눈맞은 산죽도 지나치고..
이제 큰골봉을 거쳐 90도 꺽어 불복재로 간다.
길룡저수지
구수산에 도착해서 기념사진 한컷.. 2시 40분.
오늘 산행에는 다른 산악회원이 세분 참석했는데...
앞에 여성회원은 성삼재~천왕봉~중산리 종주코스를 9시간에 했다고 하니 여전사로 불릴만 하다는 생각이....
이제 구수산 정상을 뒤로하고 삼밭재를 거쳐 상여봉으로 간다.
구수산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나무에 매달려 있는 정상 표지판.
왼쪽 봉우리가 상여봉...오른쪽이 옥녀봉이 나즈막하고 편안해 보인다.
법성면 방향의 마을.
삼밭재.
상여봉 옆의 전망바위에서 멀리 법성포항과 와탄천을 본다.
경치가 기대한만큼 아주 좋다.
법성포 포구가 시작되는 진내리 좌우두에는 ‘백제 최초불교 도래지’가 있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남중국의 동진으로부터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 인도의 중 행사존자(行士尊者;마라난타)가 불법을 전하러 올 때에 상륙했던 곳이다. 법성포(法聖浦)라는 지명도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법성포에 상륙한 마라난타는 지금의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불갑산으로 들어가서 불갑사(佛甲寺)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법성포와 불갑사라는 지명이 불교와 관련된 것임은 확실하지만, 마라난타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한국의 산천-
법성포항과 와탄천의 다리.
"아들을 낳아 지방 원님으로 보내려면 남쪽의 옥당골이나 북쪽의 안악골로 보내라 ”는 옛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옥당골이 바로 지금의 영광군이다. 조선시대에 정이품 당상관, 곧 옥당(玉堂)의 자제들이 벼슬길에 오르면 처음 부임하던 고을이라고 해서 그런 지명이 붙었다.
당시 27개 면과 12개 섬을 거느린 영광은 각종 산물이 풍부한 부자 고을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ㆍ남해안을 연결하는 뱃길의 요충지였다. 게다가 전라도 15개 고을에서 징수한 세곡(稅穀)을 갈무리하던 법성창도 이곳에 있었다. 법성창을 감독하던 법성첨사에게는 세곡 관리 업무말고도 행정적인 권한까지 주어졌다. 그 덕택에 영광군을 다스리던 수령보다도 더 큰 세도를 부렸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육상운송이 발달함에 따라 조운이 쇠퇴해지자 법성포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토사의 유입과 해저의 융기로 인해 포구의 수심이 얕아진 탓에 작은 어선조차 마음놓고 포구를 드나들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법성포는 살아 있다. 영화롭던 옛 시절에는 못 미치지만, 영광굴비의 본고장이라는 명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영광굴비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 인종 때부터라고 한다.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인 이자겸(?~1126)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부하인 척준경의 배신으로 실패한 뒤 법성포에 유배되었다. 귀양살이 중에 ‘석수어’(石首魚)라는 고기의 독특한 풍미에 반한 이자겸은 그 고기에다 ‘굴복하지 않는다’는 뜻의 ‘굴비’(掘非)라는 이름을 붙여서 인종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그 이후 영광굴비는 조선시대까지도 진상품이 되었다. -한국의 산천 -
내가 들은 얘기중에 굴비는 새끼줄에 낀 조기가 구부러지기 때문에 구비에서 굴비가 되었다고 들은적이 있는데 어떤게 맞는건지 ㅎㅎ
그리고 이제 칠산도 앞바다에서 잡히는 조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수온의 변화때문이라는데...
서해바다에서 잡은 조기는 장소가 중요한게 아니고 소금의 질과 조기를 굴비로 말리는 과정에서 해풍등 주변환경이 중요한데..
그 차이로 영광의 굴비가 유명하다고 한다.
산행후 식사에 굴비가 한마리씩 올랐는데 영광굴비라고 생각하고 먹어서인지 맛있다.
상여봉은 코끼리를 닮았다하여 상여라고 불린다는데..
어디가 코끼리를 닮은것인지 볼틈도 없이 지나쳐간다.
상여봉.
보이는 봉우리가 옥녀봉 (151m)인데...
옥녀봉은 언젠가 성인이 오길 기다리며 법성포를 바라보고 있다하여 망성봉(望聖峰)이라고도 불린다고한다.
우린 옥녀봉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 소태산생가터로 하산한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의 생가터.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다.
생가터 뒷마당모습.
윗쪽으로 옥녀봉이 보인다.
시골 정취가 묻어나는 볏짚.
옥녀봉은 높지는 않지만 풍경이 좋다.
3시50분에 하산을 완료한다. 약 4시간이 걸렸다.
백수읍에는 전남 서해안 제일의 해안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백수읍 대전리와 구수리 사이의 바닷가를 따라가는 백수해안관광도로이다.
약 18㎞에 이르는 이 해안도로는 줄곧 칠산도, 송이도, 안마도 등의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는 칠산바다를 바라보며 달린다.
이 길에서는 동해안처럼 탁 트인 전망도 일품이거니와 해질 녘에 칠산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장엄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썰물 때에는 최대 4㎞의 광활한 갯벌이 드러나기도 하고, 갯벌 곳곳에는 주민들이 설치해 놓은 ‘이강망’과 정치망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백수해안관광도로에서 가장 전망이 탁월한 곳은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음식점 옆의 해안공원과 그 이웃의 팔각전망대이다.
칠산도, 안마도, 송이도뿐만 아니라 낙월도와 위도까지도 아스라이 보인다.
이곳의 절벽 아래에는 모자바위, 고두섬 등의 기암괴석과 무인도가 어우러져서 절경을 이룬다.
해안도로는 정유재란(1597) 때에 왜적을 피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여덟 열녀를 모신 팔녀각을 지나자마자 잠시 바다와 멀어진다.
그러다가 대치미마을에서 다시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데, 모래미해변이 시야에 들어올 즈음부터는 강처럼 좁아진 바다 저편으로 법성포가 빤히 건네다 보인다.
- 한국의 산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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