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름이 걷히며 모습을 드러내는 고리봉 (1305m)
올해는 임시공휴일까지 추석연휴가 엄청 길다.
연휴기간 그리운 가을 지리산을 꿈꾸지만 방심하여 성수기 산장예약 신청을 놓친다.
성수기라 추첨제일것으로 예상하고 9월6일 공단 사이트에 접속하니 하루전인 5일 추첨신청이 종료~
할수 없이 며칠 기다려 9.15일 몇안되는 취소좌석을 노리고 선착순예약에 도전 노고단과 장터목대피소 예약에 성공한다.
이 순간 지태종주를 떠올리니 가슴이 뛴다.
만약 3박4일 일정으로 종주를 할수 있다면 꿈같은 산행이 될것 같다.
산행시작시점의 비소식은 망설임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2일 오전에 비소식이 있지만 오후부터 개는 날씨라 산행을 결심했는데
비가 많지는 않지만 꾸역꾸역 줄기차게 내린다
10월1일 밤 23시59분....동서울발 인월행 버스를 타고 함양을 거쳐 인월에 도착한다.
버스에는 등산복차림의 승객들이 열명넘게 보이는데 몇명이 내리나 보니 인월에서는 나를 포함 단둘이 하차한다.
모두 백무동으로 가나보다....
나의 산행계획은 서북능선을 타고 노고단대피소에서 1박후 둘째날 주능선을 걸어 장터목에 묵고
다음날 천왕봉에 오른후 적당한 하산코스를 잡을 생각이다.
마음은 밤머리재와 웅석봉을 거쳐 덕산교까지 이어지지만 비 예보가 있어 어찌될지.
ㅇ.산행일: 2017년 10월 2일(월요일)
ㅇ.산행지: 지리 서북능선
( 인월 마을회관~ 덕두봉~ 바래봉~ 팔랑치~ 부운치~ 세동치~ 세걸산~ 고리봉~ 정령치)
ㅇ.산행시간: 11시간 ( 04시30분~ 15:30분 )
ㅇ.날씨: 비가온후 갠 날씨
ㅇ.참석자: 대중교통이용 단독산행
구인월교.
나와 함께 인월에서 내린 분은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고 한다.
출발점은 같지만 금새 헤어지는 상황이라 동행이 큰 의미가 없고...
비가 내리는 어둠속의 산행이 싫어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내다 너무 지루해 04시10분경 배낭을 메고 나선다.
어느해 겨울에 혼자 성삼재에서 인월까지 걸었던 서북능선의 기억을 거꾸로 더듬으니 기억이 새롭다.
★2015년 2월 서북능선종주기(성삼재~구인월) => http://blog.daum.net/mathew98/1403
구인월교를 건너 몇백미터 걷다보면 흥부골 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흥부골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곧 왼쪽으로 인월 마을회관이 나온다.
04시30분 인월 마을회관.
지태종주의 시발점 또는 종착역으로 너무나 유명한 이곳 인월 마을회관.
지난번 서북능선 종주를 마치며 언젠가는 나도 한번 해볼 버킷리스트에 올려 놓고 있는데
이 시간에 환하게 불이 켜진 이유는 누군가 지태종주를 완주하고 자축연을 하는것일 터...
마을의 제각을 지난다.
덕두산 3.4km 이정목이 헤드랜턴 빛에 환하게 빛난다.
지난번 서북능선 종주때는 덕두산에서 월평마을 (인월 마을회관)까지 등로가 좋고
임도같이 너른길이 포장도로와 이어져 하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하다보니 어라 아스팔트 찻길이 나온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운받은 gpx파일을 보니 지나친걸로 나온다.
파일은 이곳에서 왼쪽길로 진행한걸로 나오는데 10미터도 안되 등로가 없다.
뭐가 잘못되었나 제각까지 다시 가보고 길 찾기를 시도해보지만
끊긴 이 길이 맞는걸로 나와 잡목이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진입한다.
길인듯 아닌듯...지반공사중이라 등로가 사라진것일까 생각도 해본다.
공사중인 곳은 푹푹 빠지고..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가시덤불에 할퀴고....
이후 비는 점차 굵어지고 어둠과 안개속에 시야는 없고
오랜시간 산행을 계획한터라 배낭은 어느때보다 무거운데
gpx파일을 보며 1시간여 등로를 찾느라 거의 탈진상태가 된다.
그때 어렴풋이 구조물을 보게되고 등로의 흔적을 찾아낸다.
이후 30여분도 어렵게 길을 찾으며 덕두산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서북능에서 자주 보던 J3클럽의 모부부 시그널을 만난다.
이 시그널도 잠시 알바하다 만난것인데...
좀 더 진행하다 보니 지사모카페에서 보던 선함님의 시그널도 보이니 이 코스로 산행을 하나보다.
월평마을 1.2km 이정목 (06시20분)
원래 이 이정목까지는 20~30분이면 넉넉히 도착하는 탄탄대로였는데
어쩌다가 2시간이 다 되어 이곳에 도착한다.
아직도 시간은 문제가 아닐수 있지만 정작 문제는
토시를 했음에도 비에 완전히 젖어버린 등산화와 탈진한 컨디션..그리고 무거운 배낭과 계속되는 비.
전에 이길로 하산했었고 이길로 왔더라면 편안한 진행이 되었을텐데..
이제 시작인데도 산행을 계속하기가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럴순 없고 힘을 내서 일단 바래봉까지라도 가보기로~
바래봉에서 탈출....이런 생각이 들다니 ㅠㅠ
덕두산 1.7km가 17km는 되어보인다 ㅋㅋ
비는 점차 가늘어 지지만 그치지 않고 내린다.
맞춘것처럼 08시 정각에 덕두산정상에 도착한다.
04시30분에 출발했으니 3시간반이 걸렸는데 만신창이가 되다니 ㅎㅎ
배낭에는 햇반,라면,누룽지,함박스테이크,육개장,과일..등등 먹거리가 넘치지만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를 한잔하며 휴식을 한다.
준비한 산악회 시그널도 흔적으로 하나 붙여놓고....
덕두산을 떠나며~
비를 머금어 생동감이 넘치는 꽃향유를 한컷 담아본다.
오늘 야생화와 보내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다. ㅋ
가을이 깊어가는 서북능선에는 구절초가 많이 보인다.
이런 녀석들 마저 없었더라면 더 재미가 없었을듯...
목적지로 변해버린 바래봉에 다다르니 쑥부쟁이, 구절초가 더 많다.
09시17분...
거의 5시간이 걸려 파김치가 되서 도착한 바래봉은 적막하기만 하다.
인적은 없고 안개만 자욱하다.
할수없이 셀카로 인증샷 한컷 남기는데
바람이 차고, 조망도 없고 지체하기가 힘이든다.
바래봉을 떠나기 전 이정목을 보며 잠시 생각한다.
용산주차장으로 가야하나...정령치까지라도 사력을 다해 가볼까....
체력이 떨어졌는데도 등로가 좋으니 자꾸 정령치쪽으로 기운다.
긴 수풀은 비가 그쳐도 물기를 듬뿍 품고있어 등산화까지 천근만근...
기이한 소나무와 구절초들.
산부추
등로에는 수크령도 도열해 집도하듯 반긴다.
09:52분 팔랑치
잡목이 점차 많아지며 얼굴을 할퀸다.
멀찌감치 떨어진 천남성도 온갖 자태를 뽐내며 자기를 봐달라네...
10:49분 부운치
여전히 조망은 없고 잡목이 더 힘들게 한다.
걷고는 있지만 즐거운 마음은 사라지고 고통만이 함께하는 상황.
부운치를 지나 헬기장에서 처음으로 반대편의 인기척을 느낀다.
장년의 친구두명이 성삼재에서 오는길이라 한다.
서로 사람을 처음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오미자주와 곶감을 권해 염치없이 하나 받아먹고 간다.
12:02분 세동치
지쳐서일까...그래도 이정목이 잘못된거라는 확신이 더 크다.
세동치 0.7km 이정목을 지난지 오랜시간이 지나 세동치에 도착한다.
12:19분 드디어 세걸산에 도착한다.
어느새 비는 완전히 그치고 햇살이 뜨겁다.
간식을 먹고 등산화를 벗어 양말을 짠다.
가을이 깊어가는 세걸산 풍경.
구름이 걷히고 파란하늘이 잠시 드러나며 고리봉이 보이니 오늘 처음보는 풍경에 탄성이 나온다.
하지만 3km 거리에 있는 고리봉이 지친 나에게는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저길 올라갈수나 있을까..... 고리봉이 저렇게 높아 보일줄은..ㅋㅋ
고리봉 가는길은 급경사에 밧줄구간도 더러 있어
지친몸에 무거운 배낭은 너무 힘이든다.
산죽구간도 몇군데 있고.
하지만 이제 빨갛게 물들어 가는 단풍과 함께 가을을 느껴보는 즐거움도 있다.
구름이 없다면 반야봉, 노고단 방향이 보이련만...
14:50분 고리봉에 도착한다.
고리봉...지리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은 여기서 고기삼거리방향으로 이어진다.
고리봉을 내려서는데 부부로 보이는 연세 지긋하신분들이 올라오신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물으니 바래봉까지 다녀올 생각이란다.
배낭도 안맸는데 바래봉이 가볍게 갔다올곳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15:25분.
정령치에 도착하니 만복대 2.0km 이정목이 또 유혹한다.
오늘 이어온 산행을 생각하니 더 이상 진행은 무리이기도 하고 이후 산행도 무리일게 뻔하다.
긴 여정의 첫날이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결론을 내리고 산행을 마친다.
좋은날을 택해 다시 오면 되지...
정령치에서 남원의 콜택시를 부르려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운좋게 대구에서 가족여행을 오신분이 귀가길에 남원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태워주어 편안하게 내려왔다.
인상이 좋으신 분들이던데 좋은 여행마무리가 되길 기원드린다.
사우나에서 땀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고 가족에게 하루도 안되 귀가한다고 알리니 어이없는 눈치다 ㅎㅎ
시외버스는 동서울까지 하루 3번 밖에 없고 오후6시차라 시간여유가 있다.
허름한 시골식당에서 제육볶음을 시켜 촌부와 말을 섞으며 소주한잔하고 귀가하니
실패한 산행도 산행이라....다음엔 멋진 지리산 산행을 기대하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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