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능선을 걸으며 바라본 천왕봉
겨울 지리산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지만 올해는 아직 발걸음을 못하고 있었다.
산행기를 보다 지리산 주능선 통제소식을 듣는다... 아! 그렇지 2.16일부터 4월말까지는 주능선 대부분이 통제.
이번 주말이 아니면 겨울 지리산의 능선을 온전히 걸을수가 없을것 같아 간단하게 결론을 내린다.
가자 서북능선으로!!!!!
ㅁ 산행일시 : 2015. 2. 7(토) 04:15 ~ 15:45 / 11시간30분 (단독산행) / 25km
ㅁ 산행코스 :성삼재~(작은)고리봉~묘봉치~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세걸산~팔랑치~바래봉~덕두봉~구인월
지리 서북능선으로 가기로 결정을 하고 동행할 친구를 찾으니...아무도 없다.
겨울 야간산행은 망설여지지만 혼자갈 수 밖에...하루전 매표를 하고...
금요일은 근무후 귀가해 배낭을 챙겨 영등포역으로 향한다.
7번방...
피곤이 밀려오는데 등을 기대고 앞을 보니 '7호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7번방의 선물'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이 방이 행운의 방?
무박산행때는 잠을 자려해도 오지 않더니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04시10분 성삼재풍경.
만복대에서 일출을 볼수 있을까....
기차에서 김밥 한줄을 먹고 오늘은 구례구역에서 먹던 재첩국도 생략하고
버스로 느긋하게 성삼재로 가리라 했는데(일출시간이 여유가 있어) 버스운행을 안한단다.
최근에는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아 버스운행을 당연히 할것으로 짐작했는데....할수없이 택시로 성삼재로 간다.
칠흙같이 어두운 성삼재건만 똑닥이 카메라의 플레시도 성능이 대단하다.ㅋ
아뭏든 성삼재에 속속 도착하는 수십명의 산객들중 혹시 서북능선 방향의 산객이 있으면
동행을 할까 10분정도 기다려보는데 어쩌면 단 한명도 서북능선쪽은 없다....모두 다 약속이나 한듯이 노고단으로 간다.
역시 또 예상대로 혼자 반대방향으로....
내가 이상한건가? ㅎㅎ
성삼재 주차장에서 100여미터 내려오면 심원마을 이정표(윗사진)가 오른쪽에 있고,
몇십미터 더 내려가면 왼쪽이 서북능선의 들머리다.
백두대간 종주능선이 노고단에서 종석대를 거쳐 이곳으로 이어지는데
출입이 제한되기도 하거니와 대부분 성삼재를 거쳐 이곳에서 서북능선을 시작한다고...
현재시간이 04시22분...
홀로 만복대를 향해 어두운 밤길을 들어선다.
날씨가 포근하고 바람도 없어 평온하기만 하다.
지리산의 날씨가 이렇다면 산행할 만 하겠다...하지만 고산의 날씨를 어찌 믿으랴.
핫팩을 개봉해 주머니에 쑤셔넣고....
진입로엔 눈도 없다.
혼자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산행은 사고의 위험등으로 항상 긴장된다.
이정목을 유심히 본다...
고도가 1065m..일단 높은곳에서 출발이니 좀 낫겟지.
바래봉 철쭉을 본적도 있고 정령치를 지난적도 있지만 서북능선 온전한 종주 도전은 처음이다.
무슨 동물을 관찰하는 장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서북능선에는 이런 산죽(조릿대)이 무수히 많다.
통로도 좁아 혼자는 별문제 없지만 교행을 하려면 불편이 많겠다.
하늘엔 별도 꽤 초롱초롱하다....일출을 볼수 있으려나.
뒤돌아보니 성삼재에서 시작된 불빛이 보이고 왼쪽의 불빛은 노고단대피소겟다.
반야봉도 어둠속에 실루엣을 살며시 보여주고...
05:00시 정각....
정상석이 있는 작은고리봉에 올라선다.
일출시간이 07시25분경으로 예상된다.
만복대에서 일출을 본다고 가정하고 천천히 이동하는데도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남을듯 하다.
서북능선에는 고리봉이 두곳인데..
이곳을 작은고리봉, 그리고 정령치 지나서 만나는 고리봉은 큰고리봉이라 불린다.
작은고리봉 정상에서 잠시 야경도 보고 숨을 돌린후 묘봉치로 이동한다.
작은고리봉을 내려서면서 만나는 멋진 나무....후레쉬가 터지니 이상해 보여~
이제 등로에는 쌓인눈이 시작되는데...여전히 조릿대 천국이다.
가지런한 동물의 발자욱이 이어져 있다...설마 어떤 녀석인지 나타나진 않겠지. ㅋ
05:34분 묘봉치도착.
이곳에서 비박하는 산객을 한분 만나 인사를 건넨다...(세걸산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분)
어둠속에 걷다보니 보이는건 없고 랜턴불빛에 동물 발자욱이 시야에 자주 들어온다. 꽤 크다.
06:30분.
쉬엄쉬엄 걸음을 옮겨 만복대에 도착한다.
막힘이 없는 만복대는 사정이 다르다...칼바람이 불고 추워서 오래 지체하기가 힘든다.
아직도 일출은 1시간이나 남은 상태라 한바퀴 돌아보고 곧장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서북능선의 최고봉 만복대 (1438m)
혼자지만 인증샷은 해야지...
이제 정령치 방향으로 이동한다.
등로는 확연히 알수 있으나 선등자의 발자욱은 없다.
기분이 묘하다...설마 계속 이런상태는 아니겠지?
일출전의 반야봉
뒤돌아본 풍경
진행방향의 운해와 멋진풍경
어둠이 물러가며 드러나는 지리산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뛴다.
멀리 지나온 만복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07시10분이 넘어가는 관계로 더 진행하는것 보다는 적당한 작은 암릉에 배낭을 내리고
이곳에서 따뜻한 차한잔을 하며 일출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첩첩산중 ...지리산
왼쪽의 반야봉은 지리산 산행시 어디서나 볼수 있고, 오른쪽 만복대도 그 위용이 대단하다.
그 너머로 빨간 기운이 올라온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게 뭐야????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온다...연극무대의 스크린을 닫듯이....
반야도 곧 안개속으로 사라질것 같다.
아직 일출을 보지도 못했는데...멋진 풍경을 더 가슴에 담아야 하는데...
07:27분
10분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으려나 보다.
여기까지 였다...나에게 보여주려는 지리 풍경은...
사방이 안개로 뒤덮이니 보이는게 하나도 없다...자..이제 떠날시간이다.
어떻게 5분만에 이런세상이 만들어지지?
고산의 기상은 급변하기 일쑤라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날이 밝았으니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등로사정이다.
서서히 눈이 많아지고...
오늘 만들어진 발자욱은 없었지만 그래도 며칠전것인지 발자욱은 있었는데..
몰아치는 진눈깨비 바람에 발자욱은 사라지고 시간이 갈수록 하얀 도화지같은 길이 만들어진다.
이거 러셀까지 하면서 그 먼길을 가야하나?
성삼재에서 구인월까지 24~5km는 될듯한데....그래도 하얀 눈길이 멋스럽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정령치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설마 그곳엔 휴게소는 겨울이라 문을 열지 않았어도 산객들이 조금은 있겠지....
07:55분.
일출을 기다리느라 30여분 지체되어 정령치에 내려서는데 어째 인기척이 없다....설마?
정령치 (해발 1172m)
정말이네....휴게소 문은 굳게 닫혀있고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 정령치휴게소.
몇번 읽어본적이 있는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여기서 본다.
적막감이 감도는 정령치
그렇다...지금 내가 걷는곳이 백두대간길.
성삼재에서 큰고리봉까지가 백두대간길이다...
그후 나는 바래봉으로 가고 백두대간길은 덕유산쪽으로.
지금은 안개정국이라 보이는게 없으니 그냥 패쑤~
정령치 윗쪽 큰고리봉 방향으로 길은 이어진다.
진행해가며 상고대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본다.
추운 날씨에 서서히 안개와 습기가 얼어가는듯...출발때만해도 정말 좋은날씨였는데..
08:07분
큰고리봉 가는길 중간에 마애불상군 이정표가 있다.
흠...왕복 600미터....당연히 가본다.
정령치 슾지
절벽에 12가지 모습의 부처가 있다는 설명...알기쉽게 숨은그림 찾기다.
몇개는 보이는구만.. 하루종일 이것만 찾고 있을수는 없어 사진으로 몇컷 찍어가기로 하고 출발 ㅋ
정령치에서 큰고리봉 등로는 가파른 오름길.
08:36분 큰고리봉에 도착한다.
이곳이 백두대간 갈림길로 직진하면 바래봉으로 가고 대간길은 고기삼거리 방향.
고기삼거리 가는길 (백두대간길)
내가 가는 바래봉가는길..
전에 내린눈은 약간 딱딱해 푹 빠지지는 않아 다행이다.
하지만 등로사정이 좋지 않아 시간이 지체되고 체력소모도 점점 심해진다.
군데군데 급경사 구간에 미끄럽고 힘든구간이 이어지는데...
겨울이 아니면 괜찮을듯한 위험구간도 종종 만나는데 혼자임을 감안 조심하며 진행한다.
09:20분경..날씨는 나아질 기미가 별로 없어 보인다.
바람이 잦아든 이곳 암릉 뒷편에 자리를 잡고 아침겸 점심을먹으며 휴식을 한다.
도시락과 김밥,빵,과일을 급조해서 약간 챙겨왔는데..
반주로 소주 한팩을 마시니 좀 생기가 돈다. ㅎㅎ
어떻게 넘어 왔을까...지나온 길이 아스라이 보인다.
하지만 가야할 길은 더 멀고...
바람에 날린 눈이 발자욱을 덮은 상태지만 길을 찾기는 그리 힘들지 않은데 너무 힘이든다.
아마 오늘 산행할 코스의 중간정도를 지나고 있는것 같다.
조금씩 하늘이 열리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건너편에 커다란 봉우리가 나타난다. 세걸산.
오늘 걸어온 길...
10:57분 세걸산 정상에 도착한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묘봉치의 비박꾼 한분외에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세걸산 정상에서 약간은 좋아진 주변을 조망하는데 진행방향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뚫어져라 쳐다보니 산객이 한명 올라오고 있다.
반갑기가 그지없다..
산악회의 당일 산행코스는 주로 세동치에서 바래봉까지 산행후 용산주차장으로 하산이 일반적인데
산행속도가 빠른 선두그룹은 진행방향의 반대쪽 500m 거리에 있는 세걸산을 왕복한후 진행하는듯.
아뭏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인증샷도 한장 남긴다.
이분들이 선두그룹....바래봉에서 다시 만난다.
열이 많은지 반팔차림의 복장이 이채롭다.
나도 일행인양 뒤따라 세동치로..
11:20분
산악회가 주로 이용하는 전북학생교육원~바래봉코스의 능선기점인 세동치를 지난다.
드디어 멀리 왼쪽으로 바래봉이 허연 정상을 보이며 손짓한다.
눈길을 헤치고 오느라 많이 지치다보니 한없이 멀게 느껴지는 바래봉...
하지만 바래봉이 끝이 아니다....이후로도 갈길이 멀기만하고.ㅠㅠ
12:03분 부운치를 통과한다.
부운치에는 너른 공터가 있어 많은 단체산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이제 팔랑치를 지나면 바래봉.
많이 가까워 진듯 한데도 멀게만 느껴진다.
철쭉이 온산을 덮을때면 이곳도 인산인해를 이루겠지.
12:39분 팔랑치를 통과한다.
거리표시는 들쭉날쮹이라 전혀 신뢰가 안간다.
바래봉
바래봉 정상을 보고 대부분 용산주차장으로 하산한다.
나는 구인월(월평마을)로 하산해서 동서울행 버스를 탈 예정이다.
조망이 좋은 바래봉인데 오늘은 아쉬움이...
바래봉은 산정답게 바람이 세차다.
13:20분 바래봉에 올라선다.
성삼재를 출발한지 9시간이 걸린셈.
한무리의 산객들이 올라와 인증샷에 열을 올린다.
세걸산 정상에서 만난분들도 보이는데 이제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구인월로 간다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용산주차장이 아니어서? ㅎㅎ
하기야 용산주차장은 많은사람들의 왕래로 길이 고속도로겠지만 난 덕두봉을 또 넘어야하니 어떨지...
귤과 과일을 먹으며 가야할 등로를 살피니 용산주차장으로 하산할까 잠시 마음이 동요한다.
그래도 그럴순 없지...못먹어도 go.
바래봉을 떠나 급경사를 내려와서 뒤돌아 보면 어떻게 내려섰는지 아찔한데...
가야할 길은 또 까마득하다.
그래도 줄어드는 남은 거리를 확인하며 화이팅을 외치며 간다.
14:13분.
마지막 봉우리 덕두봉에 오른다.
이제 구인월까지 2.4km만 진행하면 되는것인가...
하지만 300미터를 진행하니 남은거리가 3.4km로 1.3km나 늘어났다.
헉~~ 이럴수가.
등로의 나뭇가지에 J3 노란리본을 여러번 본다.
00부부라 씌어 있는걸 보니 아마 지리 태극종주를 한 부부인가 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오늘 걷게되는길이 지리태극종주의 1/4정도인듯한데..
누가 잊고간 귀마개인지...
이정표는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이제 산길을 벗어나 포장도로를 만난다.
15:45분 인월경로당....
이곳에서 장장 11시간30분의 긴 산행을 마친다.
주민들께선 찾아오는 산객들을 위해 등산 안내도는 가리지 말아야 ㅎㅎ
안내도 사진을 못찍었네요~
인월경로당에서 버스터미널까지 10분~15분정도 걸어서 이동한다.
터미널 가는중간에는 둘레길 시작점도 만나고...
산행기에서 보던 어탕전문점도 지난다.
갑자기 나선 지리산 서북능선 종주산행.
봄철이었으면 산행이 훨씬 수월했겠지만 어둠과 눈길, 나빠진 기상여건등등으로 힘들게 진행했다.
하지만 너무나 멋진 지리산의 풍경을 가슴에 담고 떠나니 기분이 좋다.
(성삼재~만복대~세걸산~바래봉~덕두산~구인월마을 / 25km, 11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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