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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재 정관식의 산행 & 전원생활
♣답사

64. (용인) 양지면 추계리 송병준 별장과 영화지(映華池)

by 송재(淞齋) 정관식 2022. 10. 29.

송병준 별장터

 

 

 

○ 답사일 : 2022. 10. 28일 금요일

○ 답사지 : (용인) 양지면 추계리 송병준 별장터 (99칸)와 영화지(映華池)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로62

 

 

 

 

 

용인~이천 42번 국도에서 600여미터 들어가면

양지면 추계2리 버스정거장이 나온다.

 

 

 

이곳이  친일 매국노 정미칠적 송병준의 99칸 별장이 있던곳으로 

지금은 별장은 없어지고 양지 온누리교회가 들어서 있다.

 

 

 

정미칠적 (丁未七賊)은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 체결 2년 후인 1907년 7월 24일에 체결된

한일신협약(제3차 한일협약 또는 정미7조약) 조인에 찬성한 내각의 일곱 친일파를 가리킨다. 

 

 

함경남도 장진이 고향인 송병준은 민영환의 식객으로 무과에 급제하고

친일행각을 하며 1890년 5월부터 1894년 4월까지 양지현감을 지내기도 했다.

1904년 송병준과 이용구가 결성한 일진회는

러시아와의 전쟁승리에 이은 조선침략에 앞잡이 노릇을 자처했다.

양지현감을 하며 추계리의 멋진경관을 알게 된것일까..

송병준은 추계리의 이 곳 10만여평에 본채만 99칸이며 높은 담장으로 둘러쌓인 별장을 지었는데

일진회원 4백여 명과 일본군 50여명이 상주할 정도로 군사요새화 하고

신작로를 통해 양곡을 수탈하고 많은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죽였다니

의병들의 주요 공격대상이 된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조선총독부도 송병준을 위해 이 곳을 지나가는 수원-여주간 기차의

간이역까지 만들어 전용하도록 배려했다하니 그 위세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지금은 99칸 별장은 사라지고 그 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입구쪽 도로변에 흔적이 남아있다.

 

 

 

 

 

 

 

그 흔적은 영화지(映華池)다.

 

 

소나무 숲 아래 팔각정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자료사진을 보면 영화지에 팔각정이 있고 아치형다리가 보인다.

 

잘 식별이 되지 않지만 영화지는 지형을 생긴 그대로 활용해

타원형의 8자형 연못 두개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면적이 300여평정도로 큰편이며 크게 훼손된것은 아니어서

조선시대 민간정원으로서의 가치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수 있을것 같다.

 

하지만 별장을 구입한 소유주가 교회에 기증을 한 상황이라고하니

언제까지 보존이 될지 미지수로 보인다.

민족의 아픈역사도 유산인데...

 

 

 

영화지(映華池)

 

 

 

 

 

송병준은 1925년 이곳 추계리 별장에서 사망해 뒷산에 묻혔지만

비난을 두려워한 후손들에 의해 파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사진에 오봉산과 금박산의 모습이 보인다.

 

 

 

 

42번 국도에서 추계리로 들어오는 길

 

 

영화지는 그 흔적은 남아있지만 관리가 잘 되는것 같지는 않다.

 

 

 

 

정말 거대한 나무.

 

 

선생님은 별장을 지을때 경기광주 도척면에서

큰 한옥을 헐어 자재를 가져와서  욕심껏 건물을 짓긴했지만

99칸 건물이 있던 위치가 

앞을 흐르는 개천이 함포하지 않은 좋지않은 위치로 평가를 하신다.

 

 

바로 앞으로 영동고속도로를 탈때 항상 보던

블랙야크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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