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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재 정관식의 산행 & 전원생활
♣답사

61. (용인) 원삼면 이주국(李柱國)장군 고택&묘소

by 송재(淞齋) 정관식 2022. 10. 28.

조선후기의 무신 이주국장군 고택

 

 

 

 

○ 답사일 : 2022. 10. 28일 금요일

○ 답사지 : (용인) 조선후기 무신 이주국장군 고택 & 묘소

○ 소재지 :

          ●고택 /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414-4(문촌로242)

          ●묘소 / 문촌리 산35-1

 

 

 

 

 

 

고택의 문이 열려 있어 잠시 들어가 본다.

 

 

이 가옥은 1720년 3월 22일 정조 때에 어영대장을 지낸 이주국장군이 출생한 곳이다. 이주국은 정종대왕 열째아들인 덕천군 이후생의 11대 손이며 함(涵)의 아들인데 문현에 죽산(지금의 원삼면)의 문촌장사(文村庄舍)에서 출생하였는데 그가 태어난 날 부친 함의 꿈에 흑룡이 대들보 위에 버티고 있다가 준마로 변화하여 난간에 서 있었으므로 그의 초면을 준(駿)이라 하였다고 한다. 문촌장사는 지금 문촌리의 이 가옥을 뜻하는 것으로 전주이씨 오백당후손의 증언과 문헌의 기록, 건축년대 등이 거의 일치하고 있으며 건축양식이나 평면구조 등을 고려할 메 고건축 자료로서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 원삼면지(遠三面誌)에서 발췌.

 

 

 

 

 

조선의 무장. 자는 군언(君彥), 호는 오백(梧栢)ㆍ덕천군(德泉君 : 정종의 왕자) 후생(厚生)의 후손. 1740년(영조 16)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내외직을 역임 후, 형조 판서를 거쳐 총융사(摠戎使)ㆍ훈련대장(訓練大將)에 이르렀다. 장군으로 20여 년 있는 동안 총융청에 7회, 어영(御營)에 6회나 임명되고, 금영 대장(禁營大將)ㆍ훈국 대장(訓局大將) 등도 여러 번 지냈다. 성품이 강직하여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드물었으나 병졸을 잘 다스릴 줄 알았다. 

 

 

사랑채

 

 

 

 

 

행랑채(왼쪽)와 정면에 안채의 모습.

100여년전까지는 후손이 거주했는데 지금은 다른분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마당이 밝고 차분한 느낌이 드는 고택이다.

 

고택은 1753년(영조 29)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 고택은 화단의 조성과 뒤뜰의 활용, 식목 등이 사대부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가옥의 입지나 조경 수법 등이 조선 후기 살림집의 고전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행랑채

 

 

방해가 될까 조심스럽게 고택을 보고 묘소로 간다.

이주국장군 묘소는 마을에서 오백미터 정도 올라가면 있다.

신도비는 이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보이는데

아마 전에는 묘소까지 신도비를 거쳐 다녔을텐데 새 길이 만들어진듯.

 

 

춘당대(春塘臺)에서 활쏘기할 때의 모습이

마치 추운 겨울철에도 잎이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 같다고 하여

정조가 오백(梧栢)이라는 당호를 하사하였다....

 

 

 

 

 

 

 

 

sk하이닉스와 구봉산 조망이 좋을듯.

오늘은 안개로 조망이 없다.

 

 

과협

 

 

 

안산

 

이주국장군 묘소 아랫쪽의 커다란 공터

위치가 아주 좋다.

 

 

이런곳에 집을 짓고 살면 정말 좋을듯...

 

 

이주국장군 고택 200여미터 근처에 묘 1기가 있다.

논바닥 가운데 덩그러니 묘가 있어 좀 특이해 보인다.

 

 

숙인 나주정씨지묘 라고 되어 있다.

확실히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주국장군과 관련이 있을것으로 추측이 된다.

 

 

좌청룡 끝부분 노란 은행나무가 있는곳이 최승희가 살던집

 

우백호 모습

 

기맥을 따라 주택들도 보이고 아름드리 나무들도 보인다.

 

 

묘에서 보는 전방 전경.

선생님 말씀이 참 졸은 곳이라 하신다.

 

 

문인석

 

 

 

좌우가 논으로 물명당자리라 한다.

나주에 가면 유명한 물명당이 있는데 저수지 가운데 물명당이 있다고 하신다.

 

 

기맥이 내려온 길

 

 

 

이주국장군 고택

 

 

기계음이 들려 가보니 요즘 보기드문 광경을 본다.

콩을 탈곡하는 모습

 

 

이제는 이런모습을 보기 힘든데

잠시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이다.

그때는 마스크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코로나 보다는 먼지때문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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