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 준경묘(濬慶墓) / 사적 제524호.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
준경묘 탐방일 : 2020년 5월 4일 (월요일)
이양무는 고려시대 인물로 태조의 5대조이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부친이다.
그의 부인인 삼척이씨는 상장군 이강제(李康濟)의 딸이다.
목조가 전주를 떠나 강원도로 이주할 때 이들도 함께 동행하였다고 전한다.
강원도 삼척의 마을인 노동(蘆洞)과 동산(東山)에 있는 고총(古冢)이 그들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 조선 조정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무덤은 국가의 수호를 받았다.
그리고 대한제국기인 1899년에 이르러 황실에서는 이 고총을 목조의 고비(考妣: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무덤으로 인정하고
노동의 이양무 무덤을 준경묘(濬慶墓), 동산의 부인 무덤을 영경묘(永慶墓)라 하여 국가 사전(祀典)에 포함시켰다.
준경묘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리인은 있지만 입장료나 주차비는 없다.
텅 빈 주차장
오미자 농장이 보이고...
미나리냉이
언젠가 백두대간길 한자락을 걸으며 능선길에서 준경묘 이정표를 본적이 있다.
1000m 고도의 대간길에 묘 이정표가 생소했는데 오늘 만나보는 날.
안내도를 보니 준경묘에서 백두대간으로 올라 댓재와 영경묘를 거쳐 원점회귀가 가능해 보인다.
<자료사진>
댓재에서 황장산을 지나 큰재 도착전에 만났던 준경묘 이정목.
준경묘 4.8km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하신분은 전문가시라 상세한 설명을 들을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전에는 차도로 다녔는데 데크길이 최근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승용차가 다닐수 있는 차도길
살짝 보이는 노란 꽃모양을 보니 윤판나물로 보인다.
애기나리
싱그러운 숲속을 걷는 기분이 좋다
나무데크길이 끝나고 차도와 합류한다.
정상의 의미가 준경묘 가는 길의 봉우리인지 모르겠으나 준경묘까지는 2.6km라 표기되어 있다.
동행하신분 말씀이 준경묘에서 봤을때 왼쪽길이 좌청룡인데 청룡길은 좌청룡에 해당된다고.
가마가 지나다닐 만한 임도같은 길.
좌측은 가파른 경사
천남성도 많이 보인다.
소나무 한그루를 보호하는 모습이 보인다.
안내문을 보니 정이품송과 혼인한 혼례소나무다.
이 소나무가 주인공.
설명처럼 곧게 자란 모습이 멋진 소나무다.
혼례소나무를 미인송이라 부르나보다.
주차장에서 쉬엄쉬엄 1시간 걸려 준경묘에 도착한다.
준경묘를 둘러싼 산세를 보니 문외한이 보기에도 명당의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이 명당자리에 묘를 쓰게 된건지..
그리고 어떻게 600여년의 시간이 지나 이 묘를 찾게되었는지
동행한 분의 리얼한 이야기를 들으니 실감이 나고 무척 재미가 있다.
조선 초기부터 강원도에 이양무(李陽武)와 그의 부인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 대표적인 곳이 삼척부 미로리의 이릉(伊陵)으로, 이곳은 조선 초기부터 국가의 수호를 받았다. 선조대 강원도 관찰사로 왔던 정철(鄭澈)이 이 무덤을 목조의 고비(考妣) 무덤이라며 수축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조정에서는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선 중기에는 삼척이 아닌 황지 부근에 이양무의 무덤이 있다는 주장이 계속 나타났다. 이후 이양무의 무덤이 삼척인지 황지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조선 말기까지 국가에서 이양무의 무덤을 확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삼척 무덤의 수호와 제향은 왕실 후손들에 의해 사적으로 진행되었다. 1880년(고종 17)에는 진사 이종(李宗)이란 사람이 삼척의 두 무덤 근처에 거주하는 종인(宗人)들과 협력하여 매년 10월에 시제(時祭)를 지냈다. 삼척의 무덤이 조정으로부터 왕실묘로 인정받게 된 것은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이다. 1898년에 의정부 찬정(議政府贊政) 이종건(李鍾健) 등이 삼척 묘역의 수호를 청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조정에서는 이곳을 조사한 후 1899년에 비로소 삼척의 두 무덤을 이양무와 그 부인의 무덤으로 인정하고 준경(濬慶)과 영경(永慶)이란 묘호를 올리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에서 관리하고 제향을 지내다가 해방 후 제향이 일시 중단되었다. 1981년부터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 봉양회(奉養會)가 설립되어 제향을 거행하고 있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준경묘로 오면서 만났던 이정목에 2.6km라 표기되어 있었는데
산길로는 여기로 연결이 되나보다.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한팀의 방문객들이 지나쳐가는데
저 분들은 능에는 관심이 없는듯 아래에서 사진 몇컷 찍고 돌아간다.
진응수를 한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물통에 가득 채운다.
전에는 진응수가 이 위치에 있었는데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하신다.
왜 한쪽의 석축은 틈이 더 갈라지는지까지
유심히 살피는 모습에서 전문가의 면모를 느끼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능을 살펴보기로 한다.
능 주변에는 구슬붕이가 무척 많다.
능앞의 석축 오른쪽은 자연석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사면에는 자연석이 여러개 보이는데 깊이 박혀 단단해 보인다.
능 좌우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가지를 뻗고있다.
햇볕을 받으려는 걸까...했는데 기운의 작용이라고 설명하신다.
능 윗쪽에서 본 모습
아래는 물이있는 작은 연못이나 늪이었을거라고 한다.
능 뒷쪽의 산길...이 길이 백두대간까지 연결되는듯하다.
능앞으로 물을 가두되 빠져나가는 수구는 보이지 않아야 하고...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을 하시지만 쉽게 설명하시니 알아들을수 있다.
능 왼쪽의 경사면에 박힌 돌들은 자연석으로 엄청나게 단단해 보인다.
능을 찾은 전주이씨 후손이라는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누시고..
고종황제의 필체라고 들었던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능을 돌아 나오며...
능 주변의 금강송은 남대문을 새로 축조할때 사용이 되었다고 한다.
금강송의 크기가 엄청나기도 하지만 곧게 뻗은 자태가 멋지고 아름답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여유있게 들아보고 주차장으로 간다.
누군가 나뭇가지위에 홈에 돌을 쌓아놓았다.
던져서 쌓은것 같지는 않은데...
시간관계상 영경묘를 방문하지는 못했다.
강원도 삼척에 있는 준경묘와 영경묘는 서로 4㎞ 정도 떨어져 있다.
1899년에 묘역을 조성할 때 각각의 무덤 가까이에 정자각을 만들었으며,
재실은 준경묘와 영경묘 사이에 있는 활기동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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