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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재 정관식의 산행 & 전원생활
♣답사

88.(원주) 인목왕후의 부친 김제남(金悌男) 묘소

by 송재(淞齋) 정관식 2024. 6. 4.

인목왕후의 부친/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金悌男) 묘소

 

 

○ 답사일 : 2024. 6. 2일 일요일
○ 답사지 : (원주)김제남(金悌男) 묘소

○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산67-1

 

 

 

 

답사하는 다른 묘소와 달리 풀이 우거진 모습을 보니

김제남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연상된다.

 

 

 

김제남은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4년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거쳐, 1596년 연천현감을 지냈다.

1597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01년 정언·헌납·지평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었다.

 

1602년 둘째딸이 선조의 계비(仁穆王后)로 뽑힘으로써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고, 책비(冊妃: 왕비로 책봉됨)되자

영돈녕부사에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해

인목왕후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공격을 받아 사사되었으나,

1616년에 폐모론이 일어나면서 다시 부관참시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관작이 복구되고 왕명으로 사당이 세워졌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의민(懿愍)이다.

 

 

 

김제남의 신도비는 마을에 있는데

월사 이정구, 계곡 장유, 택당 이식과 함께

한문학의 4대가로 알려진 상촌 신흠이 찬했다고 한다.

글씨는 당대 명필인 남파 심열이 썼고,

비석 제목은 우의정으로 시와 글씨에 뛰어난 김상용이 썼다.


선조의첫 왕비인 의인왕후 박씨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의인왕후가 세상을 뜨자 선조는 50세 나이에 19살의 김제남 딸을 왕비(인목왕후)로 맞아들인다.

세자인 광해군보다 9살이나 어린 나이였다.

4년 후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낳는데 선조에게는 왕비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적자다.

선조는 영창대군을 총애하여 광해군을 폐하고 세자로 책봉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조가 59세로 재위 41년만인 1608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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