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리골...대한민국 최대 오지에서 봄을 만나다"
[알림] 4월의 백두대간학교, 아침 6시 서울 출발
기사입력 2013-04-01 오후 4:14:02
▲ 연가리골 가는 길 Ⓒ창원사랑 |
[교장선생님의 산행지 설명]
백두대간학교 4월 산행은 첩첩산중 두메산골 자락을 찾아갑니다. 오지(奧地),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의 깊숙한 땅을 말하며 순우리말로는 '두메'라고 합니다. 4월 산행은 평상시 찾아보지 못했고 만나지 못한 오지로 들어갑니다. 원시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오지의 숲으로 들어갑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과 깊은 계곡의 새 생명들을 만나러 갑니다. 이번 산행지는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동쪽으로 점봉산, 서쪽으로 방태산, 남쪽으로 갈전곡봉, 북쪽으로 가칠봉 자락에 감싸여 있는 인제군 기린면 주위에 <정감록>에서 얘기한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란 곳이 있습니다. 물, 불, 바람으로 인한 해가 없는 장소란 뜻인데 삼재불입지처 중 7곳이 3둔 4가리입니다.
▲ 연가리골 가는 길2 Ⓒ창원사랑 |
3둔 4사리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3둔은 살둔, 달둔, 월둔을, 4가리는 적가리, 아침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혹은 곁가리를 말합니다. 여기서 '둔'이란 농사 짖기 좋은 펑퍼짐한 산기슭을 의미하고 '가리'란 계곡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땅을 말합니다.
3둔의 위치는 홍천군 내면 월둔 삼거리를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살둔은 생둔이라고도 불리우며 상남면에서 내린천 방면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오지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살둔산장까지 포장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넓은 계곡과 기암괴석들이 즐비합니다. 월둔과 달둔은 방태산을 지나 구룡덕봉을 넘어서 양양 방면으로, 오른쪽에 달둔(홍천군 내면 광원1리)이 왼쪽에 월둔(홍천군 내면 광원2리)이 자리합니다.
4가리 중 아침가리는 아침가리골과 연가리골을 이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 방향으로는 명지거리와 월둔고개가 있습니다. 밭을 일굴 수 있는 땅뙈기가 얼마나 적었으면 아침나절이면 다 갈 수 있다고 하여 아침가리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연가리골 가는 길3 Ⓒ호박 |
연가리는 진동계곡과 연가리골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적가리는 방태산자연휴양림에서 구룡덕봉과 방태산(주억봉) 사이 계곡에 있으며 이제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전쟁이 끝난 후에야 전쟁이 난 줄 알았던 오지였습니다. 명지거리는 구룡덕봉에서 아침가리로 내려서는 길의 월둔고개와 작은 약수 일대를 말합니다.
연가리골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내린천의 상류인 진동계곡으로 흐릅니다. 방태산, 갈전곡봉, 점봉산, 가칠봉이 사방으로 둘러있고 백두대간 능선 위에 있는 연가리골 샘터가 그 발원입니다. 서울에서 약 200km 정도 거리지만 아직도 418번 지방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오지입니다.
이번 산행은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산으로 들어갑니다. 갈천리에서 왼쪽 갈천약수 방향으로 오르면 구룡령 옛길입니다. 영동의 해산물과 소금을, 영서의 약초와 산나물을 지고 넘던 선질꾼들의 발자취가 아련한 길입니다.
구룡령 옛길을 한 켠에 두고 왕승골을 지나 백두대간 능선을 오릅니다. 능선에 올라 좌측의 갈전곡봉(1,204m)을 뒤로 하고 대간길을 걷습니다. 대간길 우측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좌측은 완만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동고서저. 한반도의 대표적인 지형입니다.
사스락거리는 조릿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루금을 걷다보면 연가리골 샘터입니다. 이곳에서 대간길을 벗어나 왼쪽 연가리골로 향합니다. 4가리 중 아침가리, 곁가리, 명지거리는 걸출한 산봉우리를 이고 있으나 연가리골의 시작은 백두대간 주능선입니다. 다른 세 곳에 비하여 산세가 무척이나 완만합니다.
국내 최대 원시림보호구역이며 설악산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인 점봉산과 방태산 줄기를 양 어깨에 걸머지고 있는 연가리골은 나무에 가려 좀체 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합니다. 20리 골짜기 전부가 원시림 그 자체입니다. 설악산과 지리산의 계곡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작은 소와 이름 모를 폭포들이 연출하는 비경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주위의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연가리골 계곡의 물은 언제 가도 철철 넘쳐흐릅니다. 청청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와 수달을 비롯해 냉수성 어류가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 골짜기에 의지해 5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 덕분이었습니다. 곰취, 참나물, 얼레지 등이 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나물 채취는 한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생나물을 삶고 말리면 1년 내내 귀중한 양식으로 사용됩니다.
잔설이 남아있는 4월 계곡에는 키 작은 풀꽃들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복수초, 얼레지, 노루귀, 바람꽃, 매발톱꽃, 봄구슬붕이, 양지꽃, 돌단품, 피나물, 동의나물, 금금낭화 등 온갖 꽃들이 향연을 펼칩니다. 천연기념물인 금강초롱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람과 꽃, 꽃향기와 폭포, 원시림과 그 사이로 비치는 하늘 오감을 전부 채워주는 포만감과 함께 한발 한발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검푸른 물이끼가 낀 아기자기한 오단폭포가 시원한 물소리로 반갑게 맞이합니다.
하늘과 맞닿은 골짜기.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는 숨은 오지. 휴대폰도, 컴퓨터도 모든 문명의 이기도 통하지 않은 오지. 연가리골 원시림 울창한 푸르름의 계곡에서 새봄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연가리골 가는 길4 Ⓒ홍마 |
▶구간소개
-산행코스 : 갈천리→왕승골→왕승골 안부→1020봉→연가리골 샘터→연가리골→진동리
-산행거리 : 약 11km
-소요시간 : 약 6시간 (휴식시간 포함)
-난 이 도 : 중중(★★)/하상(★)
산행 초반 왕승골에서 왕승골 안부로 오르는 오르막 구간만 난이도 <중중>이며 나머지는 <하상>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산행계획]
여유 있는 산행을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모든 산행은 전문산악가이드 두 분이 '안전제일'로 진행합니다. 산악가이드 이철승 선생님은 백두대간 종주 등 산행경력 30년의 공인 등산안내인이고, 엄재용 선생님은 백두대간을 3회 종주한 공인 등산안내인입니다.
<버스운행>
출발 10분 전에 도착하여 버스에 탑승하세요. 버스 앞에 <백두대간학교>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김종선 기사님 전화번호는 010-4152-1055입니다.
산행지가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해서 버스 탑승 장소는 덕수궁과 양재역 두 곳 입니다.
06:00 덕수궁 대한문 앞 출발(지하철 1,2호선 시청 2번 출구)
06:30 양재역 출발(지하철 3호선 12번 출구)
*아침식사는 버스 이동 중 미리 준비한 깔끔하고 맛있고 럭셔리한 김밥^^
<산행일정>
10:30 갈천리(갈천 오토캠핑장 입구) 도착
산행 준비, 스트레칭 후 출발
12:00 왕승골 안부 - 점심식사
13:30 1020봉
14:30 연가리골 샘터
15:30 연가리골 삼거리
17:00 진동리 두무터 산행 마감
17:10 진동막국수 도착(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649-1/033-463-7342)
갓채취한 향긋한 곤드레나물밥과 막걸리로 뒤풀이
18:30 서울로 출발
22:00 서울 도착 예정
*상기 일정은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연가리골 산행로 ⓒ백두대간학교 |
[산행준비물]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의, 우의, 스틱, 물통, 여벌 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스패츠, 아이젠, 얼굴가래개(버프). 그리고 반드시 점심도시락을 가져오세요.
<백두대간걸작선> 제30강 <연가리골 구간> 참가비는 9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2회 식사와 뒤풀이, 강의비, 가이드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백두대간학교 홈피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십시오(산행에 관한 문의는 이철승 선생님에게 해주세요. 010-8727-0202). 아울러 백두대간학교 카페에도 많이 놀러오시고 회원 가입도 해주세요 (http://cafe.naver.com/baekdudaeganschool)^^.
☞참가신청 바로가기
▲ 연가리골 가는 길5 Ⓒ홍마 |
[연가리골 구간 산행자료]
[구룡령(九龍嶺)] 1,013m. 본래 지명 장구목. 도로가 나기 전 강원도 홍천에서 속초로 넘어가던 고개다. 구룡령의 미천골, 미천(米川)이라는 이름도 이곳의 수도승들이 많아 공양을 짓기 위해 씻은 쌀뜨물이 하얗게 흘렀다 해서 붙은 것이다.
아흔아홉 굽이의 고개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듯하다고 해 이름 붙여진 구룡령 옛길은 지금의 정상에서 북쪽으로 30분 가량 떨어져 있는 옛 구룡령 정상~갈천리까지의 5㎞로 100여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걸어서 넘던 길이다. 구룡령 정상 주변에는 50년생 천연활엽수림의 숲으로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봄철에는 철쭉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또한 양양군과 홍천군의 경계를 정할 때 양양의 땅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하려고 달리다가 숨진 청년이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묘가 있으며 주변은 갈천약수와 미천골자연휴양림도 자리하고 있다.
-구룡령 옛길
구룡령 옛길 정상과 갈천마을의 딱 중간에 자리한 '솔반쟁이' 주변에는 1980년대 후반 경복궁 복원공사 때 재목으로 잘려나간 노송들의 그루터기가 흩어져 있다. 이곳에 자생하던 수령 100년 이상의 금강송 40여 그루가 경복궁 대들보와 기둥의 재목으로 베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갈천마을과 가까운 옛길의 아래쪽 길가에는 어른 둘이 껴안아도 모자랄 만큼 우람한 금강송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서 있다. 신목(神木) 같은 형용의 금강송이 있는가 하면, 뿌리를 반쯤 드러낸 채 늠름하게 서 있는 노송도 있다.
구룡령 옛길은 우리 사회가 옛길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구룡령의 지명과 위치가 현재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리에 밝고 산을 잘 안다는 사람들조차 구룡령의 옛길은 모른다. 대부분이 구룡령 하면 지금 차가 다니는 56번 국도가 넘나드는 고개를 원래의 구룡령길이라 생각한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 수탈 목적으로 구룡령 고개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가 지난 1994년 포장된 것이다.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지도에 원래의 구룡령의 위치가 아닌,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사람들은 구룡령의 위치를 잘못 알기 시작했다. 더욱이 1994년 이후에는 모든 지도와 행정 표기에서 구룡령의 위치가 현재 차가 다니는 지점으로 정리됐다. 백두대간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정부나 민간단체, 학자들조차 구룡령길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룡령 옛길에는 조상들이 어떻게 길을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 남아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영서와 영동을 차로 넘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백두대간의 험한 지형을 실감한다. 그래서 이런 급경사의 산지에서 말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보면 구룡령 옛길에서 노새와 조랑말 등이 큰 등짐을 지고 다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옛길은 힘겨운 고개를 가장 힘이 덜 드는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비탈길이어도 최대한 경사를 누인 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누군지도 모를 옛사람들의 지혜가 세월과 함께 쌓인 덕분이다. 어떤 빼어난 등산로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자연 속에 파고드는 절묘한 흐름이 길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숲과의 조화가 자연스럽고 깊다는 점은 걸어보면 단박에 느껴진다. 똑같은 고도의 등산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유가 길에 묻어 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큰 산의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주변의 숲을 감상하기 어려운 비탈과 고비길이 수없이 펼쳐진다. 그래서 산꾼들 가운데서도 발품이 노련하고 옹골진 이가 아니면 대부분 숲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정상으로 오르기에 바쁘다. 하지만 구룡령 옛길은 숲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옛사람들은 요즘 일부 등산꾼들처럼 싸우는 듯이 산길을 걷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갈 길이니 최대한 여유 있고 천천히 걸음이 이어지도록 길을 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숲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다니기에 편안한 길이 되었다. 선조의 경험과학이 녹록치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솔반쟁이, 묘반쟁이, 횟돌반쟁이…
구룡령 옛길에는 굽이굽이 민중들의 꿈과 희망, 아픔과 좌절도 녹아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숯을 구웠던 재탄장과 함께 철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농경사회의 시작과 함께 철기문화가 열리면서 양양 일원으로 공급한 철로 만들어진 농기구의 원재료를 구룡령의 옛길 한쪽에서 생산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철을 캐던 동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광산이 일제 강제수탈의 현장이었던 점도 흔적을 통해 확인된다.
숲으로 펼쳐진 구룡령 옛길의 또 다른 상징은 금강소나무다. 1980년대 말 경복궁 복원 과정에서 많은 금강소나무가 베어진 뒤 국내에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그러나 아직도 무리를 이룬 200~300년 된 금강소나무들의 붉은 기운이 하늘로 뻗어 있다. 굵은 금강소나무의 표본인 곳이라 해 '솔반쟁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젊은 청년 죽은 터는 '묘반쟁이', 장례식의 하관 때 회다짐을 하기 위해 쓰던 횟가루를 생산한 곳이라는 뜻의 '횟돌반쟁이' 등의 지명도 남아 있다.
[갈천리 마치레]
홍천에서 구룡령을 굽이굽이 넘어서면 첫 마을로 맑은 물과 푸른 숲, 갈천약수가 어우러진 때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약초, 장뇌, 산삼 등을 캐는 순박한 이웃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금의 갈천을 옛날에는 '치레'라고 했다고 한다. 치레를 '칠내'→'칡내'로 보고 한자로 바꾸어 갈천(葛川)이라고 했을 것이다.
[연가리골 샘터(안부)]
백두대간 능선상의 안부이며 연가리골 쪽으로 옹달샘이 자리하고 있다.
[3둔 4가리] 대한민국 대표 오지다. <정감록>을 보면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란 곳이 있다. 즉 물, 불, 바람으로 인한 해가 없는 장소란 뜻인데 삼재불입지처 중 7곳이 3둔 4가리이다.
3둔 : 살둔, 달둔, 월둔
4가리 : 적가리, 아침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혹은 곁가리
'둔'이란 농사 짖기 좋은 펑퍼짐한 산기슭 의미, '가리'란 계곡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땅을 말하는데 이 말을 소 한 마리가 하루에 갈 수 있는 단위인 '갈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진동리]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점봉산 자락에 자리하며 산지가 대부분을 이루는 산촌이다. 동쪽으로 방태천이 흐르며 전나무골이 있다. 자연마을로 갈터, 꽁바치, 두무터, 진흙리가 있다. 갈터는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꽁바치는 꿩이 많이 내려오는 밭이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두무터는 번이터 동쪽 오목한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진흙리는 토기를 굽는데 쓰는 진흙이 많이 쓰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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