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71.(수원) 안효공 심온선생 묘소.

송재(淞齋) 정관식 2024. 3. 4. 12:44

심온선생 (1375~1418년) 묘소

심온선생은 세종의 장인(소헌왕후의 부친)이다

 

 

 

○ 답사일 : 2024. 3. 3일 일요일
○ 답사지 : (수원) 심온선생묘소 (경기도기념물 53호)
○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산13-10

 

 

 

 

영동고속도로 동수원IC를 빠져나오면

왼쪽으로 혜령군 이지(1407~1440년)의 묘가 보인다.

혜령군은 태종의 아홉번째 왕자로 세종의 이복동생이며

광교역사박물관 조성으로 이장되어 왔다고 한다.

심온선생의 묘는 이지의 묘 오른쪽 능선 너머에 있다.

 

 

수원광교박물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차비는 3시간에 1천원.

 

370년 수령의 느티나무를 지난다.

 

광교카페거리 지하도를 나오면

심온선생 묘소 입구.

 

청송심씨 안효공 심원선생.

 

 

청천부원군 심온은 명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종때 대사헌과 판서를 역임하고,

세종즉위후 태종에 의해 영의정에 올랐으나

태종 이방원의 왕권강화작업을 위한 외척제거작업으로 유명을 달리한 셈이다.

 

태종은 본인의 외척인 민무질등 처남 4명을 모조리 제거하고

아들 세종의 외척까지 제거한다.

그리고 후대 문종대에 복권이 되었다고 하나

목숨이 한번 죽고나면 돌이킬 수 없는것을.

 

심온이 명나라의 사신으로 갈때

세종의 장인이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배웅을 하였을테고

어쩌면 처남들을 제거한 태종은 마지막 남은 세종의 외척을 제거하려한것 같다.

죽이려고 드는 태종의 올가미를 벗어날수는 없었을터

차라리 영의정 관직이 아니라 모든걸 내려놓고 낙향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비슷한 사례가 많음에서 비정한 정치의 속성을 느끼게 된다.

 

묘소주변의 소나무와 향나무는 전지작업중.

 

군데군데 자연석이 솟아난 모습.

지반이 단단함을 알수있다.

 

 

심온선생의 묘소

 

15세기 처음 건립한 묘표는 마모되어

2014년 광교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라고 한다.

묘표는 심온의 외손자인 안평대군의 글씨라고 한다.

 

 

심온의 라이벌이었던 박은(좌의정)의 주장으로 외척제거를 하려던 태종에게

고문끝에 죽임을 당하지만 세종으로서도 어쩔수 없었을것 같다.

심온이 죽은해에 안평대군이 태어나니 묘표를 쓴 안평이 뱃속에 있었던 셈이다.

 

심온은 자신을 사지로 내몬 박은에 대한 원한으로

청송심씨는 반남박씨와는 혼인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고 전해진다.

 

 

 

오른쪽의 재실은 이전된것이라고 한다.

심온선생의 묘소는 도로에서도 잘 보인다.

2단으로 조성된 묘역.

묘표와 상석, 아래에는 문인석과 장명등이 보인다.